탈출은 모두의 의심을 품고도 기어이 일어났다. 1. 낮과 밤이 바뀐 지 오래였다. 먼 옛날부터 차근차근 구멍 나기 시작한 하늘로 태양이 쏟아졌다. 자비 없는 열기 아래 거대한 빙하가 녹아내리고 숲은 바짝 말랐다. 육지에는 바위산과 모래가 전부였다. 그 경계에는 바짝 마른 소금이, 이어 끝도 없이 펼쳐진 검은 물이 무릎께에 찰박거렸다. 몇 백 년 전 세상을 ...
선수촌 정문에서 빙상장까지 종현은 달리다 걷다를 반복했다. 단번에 뛰어내면 15분 남짓인 거리를 뛰다 말다 되풀이하는 건 별다른 운동법이 아니었다. 깜깜한 곳을 무턱대고 뛰다가 발을 헛디뎌 다치면 안 된다는 단순한 이유로 종현은 가로등의 노란 빛이 내리는 길에서는 달리고 희미해지면 속도를 늦췄다. 선수는 몸이 생명이라는 옳기만 한 문구는 그의 모든 움직임에...
"Scores, please." 김종현 선수, 스케이트 타는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뭔가요? 몰라서 물어요? 잘생겼다는 말이겠죠, 종현씨 인기 많잖아요. 얼마 전에 가수 H씨가 종현 선수를 이상형으로 꼽은 건 들으셨나요? 침대 광고 조회수가 100만뷰 넘은 것도 알고 계세요? 공식 미디어 데이도 아닌데 연습 첫 주부터 태릉으로 들이닥친 기자들 덕분에 급...
"Go to the start, Ready." 타원의 궤적을 덧그리는 질주는 소란을 동반한다. 높은 데시벨은 레이스의 조력자와도 같다. 도핑에 절대 걸리지 않는 각성제, 빙판으로 쏟아지는 환호에 통제는 필요치 않다. 물론 가능할 리도 없겠지만. "황! 잘 잤냐?" "안녕하십니까." "어어. 민현이, 어깨 괜찮고?" "네. 안 아픕니다." "체크 잘 해야 해...
민현은 밤새 뜬눈으로 골몰했다. 오류가 난 걸 시스템에서 안다면 높은 확률로 서비스가 종료될 거다. 잠결에도 제 이름을 답해주지 않은 이에게 많은 것을 물을 수는 없겠지만 당장 그와의 연결을 끊고 싶지 않았다. 바짝 말랐던 일상에 겨우 온기가 찼는데…. 어차피 몇 달이 지나면 이런 시간을 원할 수도 없을 텐데 정해진 끝을 부러 당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빈자리를 채워드립니다. 지금 'TYPING LOVE'를 검색하세요.」 납작한 동그라미가 아직 녹지 않은 손바닥을 간질였다. 고객님이 주문하신 음료가 나왔으니 어서 가져가라는 무음의 재촉에도 남자는 광고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끝이 살짝 올라간 눈매는 초점을 잡기 위해 얇아진 채 천장 가까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따뜻한 그린티 라떼 한잔 주문하신 고객...
그래도 나 사랑하지? 계속 날 사랑해 줄 거지? 그렇지? 1. 민현은 개천에서 난 용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개천이 어디 있고 얼마나 대단한 직업을 가졌길래 용이라 하겠냐마는, 보호자 없는 중환자실에서 열 달 만에 깨어나 수도회 나눔의 집으로 거둬지고 익명의 후원자에게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아 사법시험 막차를 타서 변호사씩이나 된 민현은 분명 개천에서 난 ...
새큼한 귤향이 방안에 퍼졌다. 다기를 다루는 민현의 손짓은 마치 무용수가 몸을 놀리듯 우아했다. 손이 지나는 길에 따라 찻잔에 물이 차고 비워졌다. 고요한 소리를 따라 쏟아지는 물줄기는 겹겹이 호선을 그리며 탁자 위 수반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종현은 차를 건네면서까지 기어이 눈을 맞춰오는 민현을 힐끗 쳐다보고는 새하얀 잔을 받아 들었다. 처음 맛보는 주...
요란한 경광등 소리가 빌딩숲을 갈랐다. 먹색 라이플을 떠난 총탄이 타겟의 미간에 안착한 지 정확히 6분 뒤였다. 조준을 위해 아홉 시간을 꼼짝 않던 스나이퍼는 망원 스코프를 통해 쓰러진 타겟의 주위가 붉게 물드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웅크리고 있던 몸을 폈다. 떨어진 탄피를 찾느라 고개를 이쪽 저쪽으로 돌리자 이마에 맺힌 땀이 쌍꺼풀 위 작은 점을 ...
한낮의 태양 아래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을 셀 수 있을까? 새하얀 유니폼에 풀내음과 흙먼지를 잔뜩 묻힌 채 달려오던 넌, 내가 널 사랑하게 만들었잖아. 1. 대회 우승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하나. 105개의 공을 던지고 교체된 선발투수 황민현은 얼얼한 팔을 아이싱으로 달래면서도 쉴 새 없이 파이팅을 외쳤다. 야구장 전체가 소란한 와중에도 열 개 구단의 스카...
민현x종현 @swimming8968
민현종현, 년북, 황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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